한국 고대사에서 고구려와 발해에 대한 국내 기록이 극히 제한된 이유는 정치적·역사적 단절과 외세의 체계적 역사 왜곡에서 찾아집니다. 이와 관련해 중국의 동북공정과 일본의 역사 서술 전략이 결정적 역할을 했으며, 이는 오늘날까지 한중일 역사 갈등의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1. 고구려, 발해 기록의 공백, 왜 삼국시대의 역사서는 전무한가?
(1) 후대 왕조의 역사 편향
통일신라와 고려의 계승 논리로 통일신라부터 삼국통일 이후 ‘단일민족 정체성’을 강조하며 고구려·발해를 의도적으로 역사서술에서 배제했습니다. 고려의 삼국사기는 신라중심의 관점에서 편찬되어 고구려와 발해의 역할을 축소했습니다. 조선은 명나라와의 사대주의 관계와 소중화주의에 매몰되어 여진 변방 지역의 역사를 오랑캐의 것으로 치부하였습니다.
발해 멸망 후 유민 기록의 소실로 발해가 거란에 멸망(926년)된 후 유민들이 고려로 유입되었으나, 고려 왕조는 발해를 변방 정권으로 간주하며 체계적인 기록을 남기지 않았습니다.
(2) 중국과 일본의 역사 말살 정책
중국의 동북공정(2002~2007): 중국 정부는 만주 일대의 역사를 ‘중화민족사’로 편입하기 위해 고구려·발해를 중국의 지방, 변방 정권’으로 규정했습니다. 2024년 발간된 ‘중화민족 공동체 개론’ 교재에서는 “고구려와 발해가 당나라의 책봉을 받았다”며 역사적 자주성을 부정했습니다.
일본의 사서인 ‘일본서기’에서는 (720년 편찬) 신라,백제·가야를 ‘왜의 번속국(藩屬國)’으로 기술하며 일본 천황의 우월성을 강조했습니다. 특히 백제기(百濟記)를 인용하면서도 연대를 120년 앞당겨 한반도 지배를 허구화했습니다.
2. 누가 고구려 역사를 지우려 했는가?
(1) 중국의 체계적 역사 편취
동북공정의 목표는 중국은 고구려,발해 사적을 중국 동북지방사로 편입해 불분명한 만주의 영토주권을 강화하는 것입니다. 2024년 공개된 중국 대학 교재는 “고구려 고분 벽화가 중화문화의 영향”이라고 주장하며 고구려를 중국사로 편입했습니다. 중국의 역사적 증거 왜곡은 당나라때부터 <<구당서>>에 발해를 고구려의 별종(別種)이라 기록했으나, <<신당서>>에서는”속말말갈’로 변경해 민족적 계승 관계를 단절시켰습니다.
(2) 일본의 식민사관 확대
《일본서기》의 “임나일본부설”은 4~6세기 한반도 남부에 일본의 식민지인 ‘임나일본부’가 존재했다는 허위 기록을 통해 식민지배를 정당화했습니다. 이는 일제 강점기 ‘내선일체론’으로 연결되었습니다.
3. 주변국(중국, 일본)과 통일신라이후 정권의 입맛에 맞는 역사로 전락
고구려,발해 역사의 공백은 민족사 단절과 주변국의 체계적 말살이 결합된 결과입니다. 중국의 동북공정과 일본의 《일본서기》 왜곡은 역사를 정치적 도구로 이용한 사례입니다. 이를 극복하려면 《화랑세기》와 같은 국내 사료의 신중한 검증(근친혼등 진위여부불명확)과 한중일 공동 역사 연구가 필요합니다.